[번역] 나는 내 재능을 어제에 묻을 수밖에 없다
我不得不把才华埋葬在昨天
원문: 我不得不把才华埋葬在昨天
원문 계정: intlsy 的狗窝 · 원문 게시: 2026년 9월 14일 01:26
아래는 위 글의 한국어 번역이다. 본문의 ‘나’는 원문 글쓴이를 가리킨다. ‘算子’는 CUDA 프로그래밍 문맥에 맞춰 ‘커널’로 옮겼으며, 모델명과 시점 표현, 평가와 비유는 원문을 따랐다.
며칠 전 DeepSeek v4.1이 공개되면서 소형 모델이 도달할 수 있는 성능의 한계가 한 단계 더 높아졌다.
AI의 발전 속도는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옹알이하듯 대화나 나누던, 컨텍스트 길이도 몇천 토큰에 불과했던 초기 ChatGPT에서 추론 능력을 갖춘 OpenAI o1, DeepSeek R1, Kimi K1.5 Thinking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년이었다. 추론 모델이 등장한 뒤, 각종 도구 실행 환경인 하네스 안에서 능숙하게 명령을 실행하고 복잡한 작업을 완수하는 지금의 에이전트가 나오기까지도 1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 1년, 2년, 3년이 더 지나면 AI는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강력해질까. 스스로 진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물리적 몸을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체화 지능 같은 분야에도 깊숙이 들어가 있지는 않을까.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AI는 갈수록 커널을 잘 짠다
내가 하는 일인 커널 설계와 작성에서도 AI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문서를 찾아주고, 코드를 읽고, 버그를 찾아주는 작은 도우미에 불과했다. 이제는 CUDA, PTX, SASS 코드를 스스로 읽고, 전문 도구로 명령어마다 실행이 지연되는 시간을 분석한 뒤, 직접 커널을 최적화하는 고수가 되었다. 머지않아 커널의 실행 스케줄을 스스로 설계하고, 여러 스케줄링 방식의 성능을 비교한 다음, 이를 구현하고 최적화하는 능력까지 갖추리라 믿는다.
물론 나는 DeepSeek v4.1의 성공이 자랑스럽다. 주요 어텐션 커널을 전부 내가 작성했기 때문이다.1 모델의 뛰어난 성능은 내 커널의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대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가고, 기술의 발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앞으로 반년이나 1년이 지나면 AI가 짠 커널이 내가 짠 것만큼 훌륭해지거나, 나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AI는 1초에 300토큰을 생각하고, 0.5초 만에 명령어 한 줄을 입력하며, 20초 만에 코드 하나를 완성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없다. AI는 모델의 깊이, 추론에 들이는 자원, 도구 호출량, 즉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빈도, 나아가 병렬로 작업하는 정도까지 끊임없이 늘릴 수 있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인류는 예로부터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내가 커널을 더 잘 짤수록 새 모델의 학습과 추론은 빨라지고, 모델의 능력도 더 빨리 발전하며, 그만큼 나도 더 일찍 대체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왜 끝까지 커널 최적화에 매달리는 걸까? 우선 커널을 짜는 일이 내게는 게임처럼 커다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법을 고안하거나 내가 만든 커널의 성능이 올라가는 순간의 흥분은, 게임 스피드러너가 자신의 종전 기록을 깨뜨릴 때 느끼는 것에 못지않다. 내 커널의 성능이 제조사의 공식 커널을 훌쩍 앞서는 모습을 볼 때면 엄청난 자부심도 느낀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내가 여기서 손을 놓고 대충 일하거나, 심지어 일부러 훼방을 놓아 모델 학습을 지연시키더라도, 다른 회사의 모델들은 계속 발전해서 결국 나를 똑같이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혁명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나를 뒤엎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으면 한다.’ 모두가 이렇게 자기 파괴에 집착하는 상황에서, 나 역시 이 잔혹한 군비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AI가 정말로 나보다 커널을 더 잘 짜게 되는 날, 나는 어떻게 될까?
내 판단은 이렇다. ‘일자리를 잃지는’ 않겠지만, ‘하는 일은 바꿔야’ 할 것이다. 밥벌이는 지킬 수 있겠지만, 한때 내가 사랑했던 일을 다시는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시대의 변화와 그 속에서 내가 처할 미래를 두고 이런 판단을 내린 적이 있다.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AI의 발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5년 뒤나 10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래도 내 안목과 판단력,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힘과 지적 능력이 있다면, 시대라는 판에서 밀려나지 않고 다시 변화의 선두에 설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 판단이 보장하는 것은 내가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하는 일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면 하는 일을 바꾸라고 권하는 판단에 가깝다.
그렇다면 하는 일을 바꾼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오랫동안 깊이 파고들며 사랑해 온 커널 설계·작성·최적화 분야를 내려놓고, 에이전트라는 ‘거대 로봇의 조종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대체로 일치했다. 그런데 이제 AI는 내가 잘하던 일을 나보다 더 잘하게 되었고, 업계의 수요도 ‘고성능 커널을 짤 수 있는 사람’에서 ‘AI를 써서 고성능 커널을 더 빨리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옮겨갔다. 그 수요에 맞추려면, 나는 사랑하던 길을 떠나 아직 알 수 없는 새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엔지니어링과 상위 수준의 모델이 요구하는 것, 하위 수준의 하드웨어를 이해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높은 품질의 커널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새로운 일도 사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사랑하던 일을 빼앗기는 기분은 확실히 견디기 어렵다.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후 내내 커널을 짜던 소박한 즐거움은, 어쩌면 올여름을 끝으로 다시 누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내 재능을 어제에 묻고, 거대 로봇의 조종사가 될 수밖에 없다. 손안에는 톱니바퀴가 조금 더 늘었지만, 가슴속에서는 박자가 조금 사라졌다.
이렇게 비유해 볼 수 있겠다. 당신은 뜨개질의 달인이고, 특히 온갖 무늬를 짜고 색을 조합하는 데 능하다. 당신이 뜬 스웨터는 품질이 뛰어나고 무늬도 아름다워, 인근 마을의 부자들이 모두 찾아와 스웨터를 부탁한다. 덕분에 돈도 제법 벌었다. 당신은 창가에 앉아 차 한 주전자를 우려놓고, 창밖의 푸른 산과 맑은 물, 소와 양,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를 바라보며 오후 내내 조용히 뜨개질하는 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신기한 기계를 발명한다. 털실과 도안만 넣으면 스웨터가 저절로 나온다. 품질도 짜임새도 당신이 손으로 뜬 것에 뒤지지 않는데, 속도는 훨씬 빠르다. 다른 뜨개질 장인들도 이 기계만 있으면 당신이 이룬 수준에 손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당신 역시 기계를 쓸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 동안 쌓아 온 뜨개질 실력이 있으니, 모두가 기계를 쓰더라도 속도와 품질에서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앞설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창가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바늘에 실을 걸고, 천천히 시간을 보내던 그 즐거움은 결국 기계의 굉음에 짓이겨지고 말았다.
무력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밥벌이는 지킬 수 있겠지만, 오래도록 사랑해 온 일은 아마 포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성과 감성을 꽤 분리해서 다루는 사람이다.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때는 아주 이성적일 수 있지만, 때로는 감성적인 면도 드러낸다. 1년 동안 살던 셋집을 떠날 때, 그곳에 남은 추억과 헤어지기 싫어 한바탕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직접 손으로 커널을 짜고 머리로 최적화하던 시대와 오늘 작별하는 일은, 분명 그보다 훨씬 잔인하다.
독자 가운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이 일은 이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AI가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몇 가지 문제도 걱정하게 된다.
요즘 학생들은 과제를 할 때, 특히 실습 위주의 각종 랩 과제를 할 때 AI에 더 의존하게 되지 않을까? 선택지가 두 개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는 여덟 시간 동안 낑낑대며 랩 과제를 끝내고도 만점을 받지 못할 수 있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AI 모델을 켜서 몇 푼, 중국 돈으로 몇 마오만 들이고, 몇 분 만에 만점짜리 코드를 만들어내는 길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어느 쪽을 택할까?
그렇게 되면 많은 학생의 엔지니어링 역량이 크게 부족해질 수 있다. 코드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능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능력,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요구사항을 생각해 설계에 미리 반영하는 능력, 추상화하는 능력 등이 그렇다. 그런데 AI의 능력이 계속 강해지는 시대에도 이런 ‘엔지니어링 역량’은 여전히 꼭 필요할까? 과거의 ‘x86 어셈블리를 능숙하게 작성하는 능력’처럼 시대에 따라 점차 쓸모를 잃을까? 아니면 ‘소프트웨어에서 시스템, 하드웨어에 이르는 컴퓨터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처럼 언제까지나 가치가 있을까?
후자라면 위험하다. 엔지니어링 역량이 형편없는 사람에게 AI가 주어지면, 엉망진창인 코드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는 속도도 예전의 몇 배가 될 수 있다. 시스템 곳곳에 온갖 화근을 심어놓고, 이 세상을 더욱 허술하게 돌아가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미래 사회에서는 기술이나 지능보다 권력(power)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는 어쩌면 시대 자체가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맺음말
AI가 발전하면서 미래 사회는 두 극단 가운데 하나로 향할 수 있다. 공산주의와 사이버펑크 2077이다. 전자에서는 생산력이 크게 해방되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눈에 띄게 높아진다. (이쯤만 쓰자. 더 쓰면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 후자에서는 소수의 기술 기업이 대부분의 자원을 통제한다. 극소수만이 최첨단 AI와 온갖 기술을 이용해, 기계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기계적 승천’에 가까운 효과를 누린다. 대다수 사람은 성능이 아주 떨어지는 AI만 쓸 수 있다. 계층 이동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계층을 뛰어넘으려면 먼저 가장 강력한 AI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Anthropic이 영원히 이 세상에서 가장 앞선 AI를 쥐고 있다면, 미래 사회는 공산주의가 될까, 아니면 2077이 될까? 한번 맞혀보시라. 어느 쪽일까?
그래서 나는 여전히 가장 앞선 지능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저렴하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Anthropic이나 OpenAI가 그렇게 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특히 Anthropic이 가장 앞선 인공지능이나 AGI를 손에 넣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 심각성은 히틀러가 연합군보다 먼저 원자폭탄 기술을 손에 넣는 것에 못지않다. 내가 DeepSeek을 선택했고, 지금도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강력하고 빠르며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한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2077이라는 극단에서 조금이나마 되돌려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세상이 평안하기를. 모든 아름다운 것에 축복이 깃들기를. May all the beauty be blessed.
-
여기서 ‘주요 어텐션’은 head dim = 512인 MQA attention만을 뜻한다. 중요도가 높은 토큰을 top-k개 고르는 인덱서(indexer)는 포함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다른 동료들, 역시 실력이 아주 뛰어난 동료들과 그들의 AI 에이전트가 작성했다. ↩